2013년 2월 14일 목요일

[책] 수레바퀴 아래서





어제 책을 놓을 수 없어 끝까지 다 읽고 잤더랬다. 뭔가 여운이 남은듯한 기분.

좋다.
멋지다.
그 작가의 자서전 같은 아침에 샤워하면서도 그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가 힌두를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뭐 이런 :)


한스 기벤트와 하일너는 헤세 안의 '두 자아'였던거 같다. 한스 기벤트는 실제도 그의 발현된 자아였고 하일너는 그가 동경하는 그가 꿈꾸는 그가 바라는 자아이지 않았을까 싶다.
"자기만의 자그마한 방 ㅡ 시험이 지금까지 그에게 가져다준 유일한 축복이었다. 그 안에서 한스는 어느 누구에개도 방해받지 않는지배자 였다."
내가 혼자 있는 시간, 혼자 있는 공간을 무척 소중히 여기는 이유가 이거였나보다. 온전히 내가 지배하는 시간과 공간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왕따에게 도움의 손길을 쉽게 내밀지 못하는 사회.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고 현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기준조차 비슷하다.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수레바뀌에 깔림. 짓밟힘. 나는 수레바퀴 어디쯤 살고 있을까. 어딘가에 깔려 있을까? 수레 위에 올라 앉아 있을까? 수레를 끌고 있을까? 그냥 길바닥에 나앉아 있을까?

세상의 잣대로 친구 사이를 갈아놓으려 함. 이 또한 우리만의 지금만의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의 잣대, 세속적인 잣대, 나도 이제 때가 많이 묻었나.

실패해도 괜찮은데. 꼭 잘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 것일까.

마음에 들었던 표현.
가득 채워 넣을 수 있는 그릇
다양한 종류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논밭

한스 기벤트가 겪는 우울증에 대한 묘사의 리얼함. 그가 겪어보았기에 서술 가능했던 것일까? 흐느적대는 기분. 무거운 몸. 누구나(?) 한 번 쯤 경험해보았을 듯한 그 무기력감.

지식노동자에서 육체노동자로의 전환.
숭고하지 않은 일이 있는가. 나는 우리 기숙사를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와 산경동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께 꼭 밝게 인사드리고 귤도 챙겨드리고 그런다. 내겐 너무 감사한 분들인데. 좀 비약해서 말하자면 이 분들의 일이 교수님의 일보다 덜 숭고하다고 할 수 있을까?

책의 여운이 남았다.

책을 총체적으로 평가하거나 책과 관련된 모든 생각을 기승전결이 있게 깔끔하게 정리하는 글을 작성하는 일은 내게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파편화된 조각들만 나뒹굴뿐. 특히 문학작품은 더 그렇다.

헤세는 왜 이런 글을 썼을까.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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