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8일 목요일

[책] 엄마를 부탁해

과 동기가 이 책을 읽으며 많이 울었다며 나보고도 한 번 읽어보라고 해서 냉큼 도서관에서 책을 예약했다. 어제 빌려서 저녁부터 읽다 자고 오늘 아침에 마저 다 읽은 책. 어제 저녁에 읽으면서 자꾸 눈물이 나서 쉬어가면서 읽었다.





검정색 글씨는 책 내용. 파란 글씨는 내가 느낀 소회.


엄마가 강아지 팔아서 갖고 싶은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딸은 '책'이라고 답한다. 대부분의 것은 엄마가 직접 기르고 키워서 충당하고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제값이 아닌 깍아서 구매하지만 책은 엄마가 직접 고르지도 않고 값을 깍지도 않고 사줬다. 엄마는 글을 읽을 줄 모른다.

너의 모든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우리 엄마에게도 언니를 키우는 과정이 다 새로웠겠지?

우리 엄마가 내 세상을 만들었고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듯,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에 ㅈㅇ이랑 식사하고 연구실로 돌아가는 길에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는 일하는 여자로 살아야 한다고. 우리가 보고 자란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 그러하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끔 길러졌기 때문에. 경제적 자립성 없는 여자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박소녀 할머니가 어린이집에서 봉사하시고 책을 읽어 달라고 하셨다는 대목.
박소녀 할머니가 글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당신의 딸이 쓴 책도 읽지 못하는 안타까움. 내가 무슨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엄마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운 분야로 여겨질 지라도 최대한 이해시켜드리도록 노력해야겠다. 엄마에게는 내가 무얼 했든 대견하고 자랑스러우실 테니까.

전에 내 책상위에 펼쳐진 영어 책들을 보면 엄마나 아빠가 우리 딸 대단하다고 기특하다고 하셨었다. 난 잘 읽지도 못하고 이해력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읽을만 하다고 했다. 다 엄마아빠가 잘 키워 주셔서 내가 영어로 된 문서도 읽게 된거니까. 컴퓨터 관련된거 이런거 여쭤보실때 귀찮아 할 때도 있었는데 이젠 그러지 않는다. 왜냐면 내가 컴퓨터를 활용할 능력을 습득한 것도, 영어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한 것도 다 부모님 덕이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유전자를 물려주셨고, 그럴 수 있게 공을 들여서 교육시켜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잘나서 그런거 하나없다. 거만해 하지도 말고 귀찮아하지도 말고 무조건 잘하자.

이 책의 어머니는 옛날 어머니라 스토리가 확실히 더 격하기는 하다. 아버지가 대놓고 바람피고 (생각해보니 이건 현대에도 같다) 어머니가 글을 못읽는다 (이제 영어 혹은 컴퓨터 스마트 디바이스 등으로 다시 대변되는 듯 하다)

3부에서 아버지가 혼잣말 하는 부분. 나, 왔네 하면 어디선가 대답하던 부인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대목.
서로에게 익숙해진다는 것. 그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곁에 있어 소중함을 몰라서는 절.대. 안될 일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 부분 중 하나는 엄마가 나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 가였다. 나는 얼마나 자랑스러운 딸일까. 앞으로 더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엄마가 속한 커뮤니티에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전에 엄마와 같이 치과에 간 적이 있다. 사촌오빠가 치과 의사라 (직계는 아니고 살짝 먼 사촌오빠 오빠긴 오빤데 나이가 많으신) 엄마랑 같이 안부도 묻고 대화도 나눴다. 근데 거기서 엄마가 자랑인듯 아닌듯 내 이야기를 하는데 '내딸 최고다' 이렇게 느끼는게 너무 눈에 보였다. 나는 그 앞에 서있으니 '별것도 아닌데' 싶은 마음에 왜 저렇게 자랑하시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내가 어디가서 엄마 기죽이는 딸은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엄마한테 별것도 아닌걸 뭐 그리 자랑하냐고 했더니 남들한테 나 자랑 잘 안하니까 가족한테라도 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게 벌써 한 6년정도 전의 일이다.

우리 엄마는 내가 멋드러진 정장을 입고 삐까뻔쩍한 높은 건물에 사원증을 목에걸고 '띡'하면 문열려서 들어가는 그런 모습을 그리고 바라셨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까지 입사를 할까 말까 고민했던 큰회사에 들어갔던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맞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그러고 나서 엄마가 받았던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엄마는 어떻게든 내가 다른 직장을 새로 구하든 사업을 세팅하든 학교를 합격하든 다음 스텝에 대한 확정을 짓고 나서 그만두길 바라셨던것이다. 엄마가 울면서 내가 너를 잘못 키웠는가 보다고 하실 땐 정말이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이 아팠다. 항상 네 인생은 네것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고 네가 행복해야지 아무도 네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내마음대로 하고나니 엄마는 덜컥 걱정이 되셨는가보다. 그리고 내가 이제껏 엄마에게 그 정도의 신뢰도 쌓지 못한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 더 속상했다. 그런 일이 있은지 2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어떻게든 알아서 잘 하겠지 생각하시는 것 같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지 그렇게 생각하는게 마음 편해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종로구. 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 못찾겠다고 시작된 이야기였지만 크게 공감하는 이야기다.
고등학교 때 부터 건축학도를 꿈꾸고 도시공학을 전공한 한 사람으로서 아니 그냥 평범한 도시의 시민으로서 자연의 일부인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다시 엄마가 된 그녀의 딸들. 우리 언니도 엄마의 딸이지만 한 아이의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나도 축복받아 누군가의 엄마가 되겠지.

엄마가 주인공 시점으로 나와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엄마는 새가 되었다.

할머니는 손자 걱정이지만 외할머니는 에미 걱정이라는 대목.
부모라는게 다 그런가보다. 나도 엄마 아빠가 조카를 너무 예뻐하셔서 언니보다 조카가 예쁘냐고 더 사랑스럽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엄마아빠는 그래도 언니가 더 소중하고 예쁘다고 하셨다. 내딸이라면서. 이건 당시엔 좀 충격이었는데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딸이 엄마에게 밍크코트를 사준 이야기.
입사하고 나서 제일 먼저 엄마한테 가방을 사드렸다. '나 이런거 들어도 되?' 라고 묻는 엄마께 엄마 충분히 자격있다고 내가 마음 같아선 더 좋은거 더 많이 사드리고 싶은데 일단 기다려 보라고 그랬었다. 더 좋은거 많이 사드리고 맛좋은 음식도 많이 사드리고 좋은 곳도 모시고 다니고 싶다. 민철이 부모님도 한마음으로 잘 챙겨야지.

엄마의 인생이 희생으로 점철되지 않기를.
내가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이길 바란다.



# 떠먹인 밥숫가락이 몇이고 업고 걸은 걸음이 몇걸음일까


지난 주말에 아버지 생신파티를 위해 고깃집에서 외식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손님들 대기하는 장소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가족끼리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작은 게임기 앞에 아이들이 여럿 모여있었다. 아이들을 데려가서 밥을 먹이고 안고 걸어가는 엄마들을 보면서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가 나에게 떠먹인 밥이 몇 숫가락이며 나를 업고 걸어다닌 걸음이 몇걸음이 었을까. 평소 엄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살뜰히 챙기는 귀여운 딸이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니 또 한 번 뭉클해졌다. 그래서 엄마한테 바로 말씀드렸다. 엄마가 나에게 떠먹인 밥이 몇 숟가락이고, 나를 업고 걸으신 걸음이 몇 걸음이 될까 순간 생각이 들었다고. 나 키우느라 정말 고생하셨고 또 감사하다고. 그런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이쁘다고 엄마가 토닥여주셨다. 밥 숟가락 업고 다닌 걸음이 전부가 아니다. 나를 위해 하신 청소며 빨래며 나 먹이고 공부시키려고 일하신거며 어디 헤아릴 수나 있겠나.

# 낡은 아부지의 와이셔츠

사실 이건 엄마 뿐 아니라 아부지도 마찬가지다. 전에 빨래를 널다가 아부지 와이셔츠를 너는데 목주변이 낡아 헤져있었다. 엄마한테 나 예쁜옷좀 사입히라고 그렇게 이야기 하시는 분이 정작 당신은 이렇게 헤어진 옷을 입고 계시다니.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누군가 나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난 지금이라고 답하고 싶다. 민철이를 만나고 민철이랑 연애하면서 느끼는 기쁨과 행복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정도이다. 이런 식상한(?) 대답말고 과거 중에서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영국에서 머물렀던 반년이라고 하고싶다. 당시에 정말 근심걱정없이 행복한 시기였고 간혹 집에 돌아가고싶어 한국에 가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난 단 한번도 그런적이 없었고 오히려 한국에 오고나서 이따금씩 맨체스터에 가는 꿈을 꿀 정도다. 여튼 그 한창 좋았던 시절에 내가 운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빠생각이 나서 울었다. 그곳에서 흥청망청 지낸 것은 아니었지만 먹고 자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는 지냈다. 그런데 문득 내가 쓰는 돈을 계산해보니 그 액수가 적지 않아 아빠께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아빠는 평생을 바쳐서 우리들 공부시키려고 열심히 일하시는데.. 나 여기와서 이렇게 놀라고 이 돈을 보내주신게 아닐텐데..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 마침 새로 생기는 시험 준비반으로 시험봐서 옮기고 목적성을 같고 더 열심히 공부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었다.

# 강심장의 김정화 이야기

몇주전 주말에 서울집에 갔는데 부모님께서 여행을 가시는 바람에 밤늦도록 집을 지키며 혼자 테레비를 본 적이 있다. 강심장 재방송을 보는데 연기자 김정화씨가 본인 어머니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머니께서 암투병을 하다가 얼마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를 보내기 전에 함께 할 것들'이란 주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그 전에는 그런 류(?)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번엔 이상하게 마음에 너무 와닿는 것이었다. (철이 들었나?) 그래서 거기서 이야기 해준 걸 마음에 깊이 새기게 되었다. 엄마랑 사진을 많이 찍으라고 해서 요즘은 서울 가서 생각 날 때 마다 폰카로 엄마랑 셀카를 찍는다.

# 먼저 전화하기

지난 학기에 술자리를 파하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여자 네 명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얼마나 자주 엄마에게 전화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놀랐다. 하루나 이틀에 한 번 꼴로 전화하는 아이가 둘이나 있었던 것이다. 영국 있을 때 엄마가 일주일에 한번은 전화하라고 해서 지켰다. 일본가서도 일주일에 한 번 전화를 했다. (그 중간에 메일은 생각날때 마다 보냈다. 사진과 함께) 그런데 대전은 같은 나라고 하니 전화를 자주 안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가 내가 자주 전화하지 않음에 서운해 하신 다는 걸 알고 부터는 의식적으로 전화를 자주 하기 시작했다. 요즘도 그래서 생각날 때 마다 전화를 한다. 엄마가 궁금해서 나를 찾기 전에 먼저 전화해드리는게 효도라는 걸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가 결혼해서 따로 살게 되든 직장일로 아무리 바쁘게 되더라도 엄마께 전화 챙기는건 앞으로 꼭 잘 해야겠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다가 엄마가 생각나서 또 바로 전화를 했다. 그래서 그 책을 읽다가 엄마 생각나서 전화했다고 했더니 '그래도 넌 엄마 생각하면 짠~하고 그런건 없지?' 이러셨다. 엄마가 막 한을 안고 살아오셨다거나 일방적인 희생으로 이루어진 삶을 사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하면 짠~한 그런건 있다고했다. 엄마가 이 책을 읽으셨을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엄마도 이 책을 읽으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외할머니 생각을 많이 하셨다고. 엄마도 여자고 엄마도 사람이고 엄마도 소녀시절이 있었던 사람인데 나는 엄마를 그냥 엄마라고만 생각하고 사는데 치여 책 읽을 여유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실이 부끄러웠다. 나는 그 누구보다 엄마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렇지도 않았던것 같다.

전에 세바퀴라는 프로그램에서 설문조사 한 내용을 보는데 주제가 '사위에게 서운할 때'였다. 등수에 의외의 내용이 있었는데 바로 '딸이 친정올 때 허름한 옷을 입고 올 때'였다. 부모님 눈에는 어떤 옷을 입고 오는지도 마음이 쓰이나 보다. 그 방송을 보고 나서 엄마한테 말씀드렸더니 엄마도 공감하시더라! 그래서 이제 서울 갈 때 옷에 신경을 쓰기로 했다.

주말에 서울에 가더라도 약속 챙겨다니느라 바쁘고 늦게 들어와서 다음날 일찍 나가버리는 그런 바쁜 딸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늦게 들어와서 새벽에 주무시다 나 때문에 깬 엄마랑 엄청 수다를 떨지만) 이젠 부모님과 시간을 더 자주 더 많이 보내도록 마음을 써야 겠다. 김미경 교수님께서도 결혼 전에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은 결혼 후와 다르니 결혼 전에 의도적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라고 말씀하셨다. 더더더더 마음 쓰는 착하고 예쁘고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야지!

효도 할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더 없이 잘 하자 :)

※ 덧글. 이 글을 (내가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알려드리자는 취지에서) 지난 주말에 엄마께 읽어드렸더니 좋아하셨다. 덩달아 다른 글도 몇개 읽어드리고 휴대폰에 이 블로그 주소를 북마크로 등록해드리고 옴. 뿌듯뿌듯!

댓글 1개:

  1. 어떻게 보면 살짝 미리 경험한 선배로써, 혹은 살짝 늦게 경험하는 후배로써 너무 공감가는 글이야. 결국 부모님도 한 개개인이시고, 살아가면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떨어져 지내면 더 삶의 변화에 차이가 생기는거 같아. 막연하게 내가 생각하는 부분이 텔레파시처럼 부모님과 공유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면서 점점 다른 생각을 하는 부모님을 보고, 생각이 짧은 난 '우리 부모님이 변했어.' 라고 생각했었어. 정작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건 우리인거 같아. 지금 결정들이 바로 좋은 결정이다 나쁜 결정이다로 드러나지 않겠지만, 네가 열심히 생각하고 최선이라고 결정한 일이니까 절대 후회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해 ^^ 나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좁히지 못하고, 아직도 방황중이네... 그래도 좋은 결정을 할 수 있겠지? 항상 감사한 마음 잊지말고 부모님들께 자랑스러운 아들 딸들이 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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